[경상북도 칠곡군] 가실성당
가실성당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1길 1
가실성당은 1895년에 조선 교구의 11번째 본당으로 초대본당신부는 파리외방선교회의 하경조 신부다. 본당의 넓은 관할 지역 안에는 공소 31개가 있으며, 현재의 성당 및 사제관은 1924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의 주보성인 성당은 인민군 병원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전쟁 관계로 월남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신부들은 1952년부터 가실성당을 위한 사목을 맡고있다. 가실성당에 속하고 있다가 본당이 된 곳은 모두 4개이며, 김천 황금동, 용평, 퇴강, 왜관이 있다. 1995년 100주년 사업으로 현재 성모당이 형성되었고 성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높이는 색유리화는 2002년에 설치되었고 2003년에 성당 및 구사제관은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4-976-1102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주차시설
가능
◎ 주위 관광 정보
⊙ 달성 태고정
- 홈페이지
https://tour.daegu.go.kr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달성태고정은 조선 성종 10년(1479)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 세운 별당건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서 일부만 남았던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항상 바르고 올곧게 살자는 뜻에서 일시루라고도 한다.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이곳에 온 명나라 선무관이 남긴 현판 등이 걸려 있다
네모난 모양의 단 위에 서 있으며 앞면 4칸 ·옆면 2칸 크기로, 동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옆면과 뒷면에는 문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가구나 세부 가공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초익공계의 정교한 가구 구성을 갖추었기에,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태고정 주변으로 도곡재와 육신사, 충효당이 있으며 사육신기념관을 방문하여 사육신과 박팽년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 육신사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로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숙종 17년인 1691년 낙빈사를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 지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후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내고 있다.
현재 육신사에는 숭정당, 숭절당, 사랑채, 외삼문, 내삼문 등의 건물과 보물 제54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 등이 남아 있다.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일산이 태건립한 것으로 종택에 딸린 별당 건물이다. 이 밖에 사육신 육각비를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의 기념 비석, 헌성 방명록 비, 제13·14·15대 국회 의장 송산 박준규 생가 터 표석 등이 세워져 있다. 묘골 아름 마을 입구에는 사육신 기념관이 있다.
⊙ 도곡재
- 홈페이지
https://www.khs.go.kr/main.html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0
도곡재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달성군 하빈면에 위치하였다. 조선 정조 2년(1778)에 대사성인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세운 건물이나, 정조 24년(1800) 경에 도곡 박종우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후대에 퇴칸을 달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도곡재는 태백산지역 살림집의 일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건물이다.
⊙ 묘골마을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 낙빈서원
- 홈페이지
http://www.grandculture.net/daegu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21
낙빈서원은 단종의 복위에 목숨을 바친 하위지, 박팽년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를 배향한 서원이다. 본래 충정공 박팽년의 위패를 봉안한 하빈사가 있어 후손들이 향사를 지내왔는데, 현손인 박계창이 사당 밖에서 사육신 여섯 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사육신 여섯분을 함께 모시고 제향하게 되었다. 1691년(숙종 17)에는 별묘와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창건하였는데, 3년 후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인 1871년(고종 8) 훼철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4년 문중에서 원래 터보다 위쪽인 현 위치에 강당만 중건하였고, 사당은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서원의 모습보다는 문중의 재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에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에 육신사가 세워지면서, 사육신의 위패를 옮겨 봉안하고 매년 춘추절 향사도 지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낙빈서원은 현재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서당에서 출발한 교육 기능 중심의 서원과는 달리 조상을 모시던 사당에서 출발한 조선 후기 서원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을 모신 서원은 전국에 여러 곳 있었는데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 창절사가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남아 있다.
경내 건물은 강당 1채만 남아 있으며, 강당 건물에는 낙빈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밖에 비석 1기가 남아 있다. 현재 낙빈서원에서는 향사를 드리지 않고 육신사에서 지낸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에 2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가운데 마루 2칸의 칸살을 좌우 온돌방보다 작게 잡았으며, 좌우 온돌방과 마루 사이는 4분합 들어 열개문을 달았다. 온돌방 뒤편에 벽장을 만들고, 전면 출입문 위에 환기창을 두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낮게 조성한 후 정면 기둥만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인근에는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으로 달성 삼가헌 고택이 있다.
⊙ 달성 삼가헌 고택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넓은 대청과 골방이 딸린 온돌방 2칸, 마루방, 청지기방을 두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개방된 툇마루 등으로 꾸몄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원래 4칸 규모의 'ㅡ자형'이었던 건물을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 장독대
- 장독대
054-974-0222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대로 1917
2대째 자연산 미꾸라지만 사용한 추어탕 전문음식점으로 경상도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되었다. 통발로 미꾸라지를 잡아서 사용하는 자연산 미꾸라지와 순수 한국 토속음식 (반찬류) 만으로 식단을 짜 잊혀가는 우리의 맛을 전하고 있다. 미꾸라지 튀김이 특히 별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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