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전(경주)

대한민국 관광지 정보 2025. 7. 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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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경주)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통일전은 삼국 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국 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이 여러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중 잠시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4-774-8761

- 쉬는날
매주 월요일

- 유모차대여정보
불가

- 이용시간
- 하절기 09:00~18:00

- 동절기 09:00~17:00

- 주차시설
가능





◎ 입 장 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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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경주 정강왕릉

- 홈페이지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
경주 문화관광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정강왕은 신라 제50대 왕이다. 릉은 남산 동남록 송림 속에 있다. 봉토 밑에는 삼단의 호석(護石)이 있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으로 축조하였다. 하단은 한층 넓게 쌓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은 밑은 넓고 위는 좁게 쌓았다. 전면에는 1매 석상이 놓이고 그 주위에 얇은 석단이 있으며 조금 떨어져 일렬 장대석이 있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다음 해 7월에 훙어하였다. 이 왕릉의 형식은 선왕 헌강왕릉과 같으나 별로 치적(治積)이 없음에도 전왕(前王)과 같은 형식의 왕릉을 만들었음은 태평성세의 여세를 따라 그의 형의 왕릉형식을 따른 듯하다. 보리사 동남에 장사 지냈음도 모두 전왕(前王)의 뒤를 따른 듯하다.

* 연혁(유래)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 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m, 지름 15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깬돌(割石)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 통일전 은행나무길

-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남산동)

통일전 은행나무길은 경주시의 대표적인 가을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길이다.
근방에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된 통일 전부터 시작되어 직선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은행이 절정으로 물드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통일전으로 올라가 누각 위에서 통일전 은행나무길 전체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 경주 서출지

- 홈페이지
http://gyeongju.go.kr/tour

- 경주시청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남산동)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경주 헌강왕릉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새남산길 62

신라 49대 헌강왕의 릉(875∼886)으로 왕은 문치(文治)에 힘쓰고 황룡사에 백제좌강을 베풀었다. 민가들은 지붕을 갈대로 덮지 않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나무로 짓지 않고 숯으로 지었으며 거리에 노랫소리가 가득한 때였다. 태평성세를 맞이했던 때이며 봉분 밑에는 장대석으로 4단의 석축으로 축조하였다.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 김정)을 모신 곳이다. 봉분 높이 4m, 지름 15.8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4단의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cm, 너비 128~9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의 태자로서 문치(文治)를 잘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 왕릉 내부가 조사되었다.

⊙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

- 홈페이지
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29-3

2003년과 2008년에 걸쳐 진행된 발굴조사를 거쳐, 8세기 초반에 창건되어 12세기에 폐사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 사지에 위치한 동ㆍ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전반에 건립된 5.85m 높이의 삼층석탑이다. 두 탑은 모두 상, 하 2층의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塔身, 몸돌]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은 각각 1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대부분 사라지고 노반석[露盤石, 탑의 상륜부를 받치는 돌]만 남아 있다. 동탑은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되었던 것을 2009년 사지 정비와 함께 원위치에 이전 복원되었으며, 탑지 발굴조사 결과 서탑과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기초부를 추가로 조성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서탑은 무너져 있었던 것을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동탑과 함께 원위치에 복원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동탑과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두 탑은 복원 과정에서 일부 새로운 부재들이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 석탑 기초부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할 때, 8세기 전반에 건립되어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과 양식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고려할 때 국가지정국가유산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 경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화랑교육원


- 홈페이지
화랑교육원 http://www.gbe.kr/hwarang/main.do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새남산길 62 (남산동)

화랑교육원은 신라 화랑의 얼을 계승하여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고 바른 품성과 인격을 도야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3년 전국 최초 학생 교육원으로 개원하였다. 시설은 화랑관, 운동장, 강당, 식당. 정자, 생활실 등이 있으며 프로그램으로는 화랑 안전체험, 호연지기 체험, 화랑 심성교육 등 신라 중요한 유적 답사 체험과 주말 국궁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 경북천년숲정원


- 홈페이지
정원누리 https://garden.koagi.or.kr/cpage/garden/
경상북도 산림 https://www.gb.go.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6-4 가든센터

경주 동남산 기슭에 자리한 경북천년숲정원은 본래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이었다. 산림환경을 조사하고 천연기념물 후계목의 증식과 보존, 병해충 방제 등 산림보호를 위한 연구 기관이었으나 2023년 시민에게 개방된 숲공원으로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지방정원으로는 국내 5번째이고 경북에서는 1호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경북 산림 환경연구원이 있고 동쪽으로 숲과 오솔길, 개울과 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제일 먼저 거울 숲을 만난다. 외나무다리에 서면 맑은 실개천에 그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 다하여 이름이 지어진 곳이며 이어서 분재원과 암석으로 조성된 정원과 구름폭포, 바닥분수가 있는 서라벌 정원, 마지막으로 버들 못 정원을 만날 수 있다. 각 구역별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식재되어 있어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니며 계절에 따른 변화도 즐길 수 있다. 식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잘 작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교육 현장으로도 추천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동궁과 월지, 선덕여왕릉과 월정교 등이 있으니 경주 여행 코스로 함께 방문하여도 좋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강덕순 애정 변천사>
석삼에 대한 설움과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이 한데 뒤섞여 덕순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외나무다리가 있던 곳이다. 극 중에서 빨래터로 등장한 외나무다리 주변은 사진 명소로 특히 유명하다.

⊙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 홈페이지
https://www.gb.go.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7 (배반동)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는 신라 천 년의 시간을 흐르는 경주 남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우량수목 등 식물 유전자원 보존 및 증식, 천연기념물 후계목의 증식과 보존, 병해충을 방제 등 산림보호를 위한 연구 기관이며, 지방 정원, 숲 체험원 조성으로 생태휴양공간을 마련하고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위한 임도 및 사방사업을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이다. 숲공원으로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국가 정원으로는 국내 5번째이고, 경북에서는 첫 번째 숲 정원이다. 경북천년숲정원은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정원과 오솔길. 메타세콰이어 숲길, 거울숲, 외나무다리 등 이 있으며, 각 구역별 계절별 꽃을 피우는 나무와 야생화들이 식재되어 있어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니며 계절에 따른 변화도 즐길 수 있다. 식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잘 작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교육현장으로도 좋다.

⊙ 보리사(경주)

-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41-30 (배반동)

경주 남산 자락에 자리한 보리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됐으며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다. 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등장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선원, 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과 보리사마애석불이 있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좋다. 또, 보리사에서 산길을 따라 35m쯤 오르면 바위에 새긴 마애석불이 있다. 조각이 거칠고 아랫부분이 생략되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보리사는 경북천년숲정원과 통일전, 서출지 등의 명소와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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