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북도

[전라북도 장수군] 남평문씨열녀비

반응형

남평문씨열녀비


- 홈페이지
http://tour.jb.go.kr/index.do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하오마을 입구 도로변

남평문씨열녀비는 산서면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으로 가는 도로의 하오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정려각 안에는 ‘열녀학생권희언처남평문씨지려’라고 새긴 비석과 남쪽 벽면에는 문 씨 정문기가 걸려 있다. 이 정문기의 내용에 의하면 남평 문 씨는 시집온 지 3일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다가 양자를 두었으나 양자마저 병으로 죽게 되자 그도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유언에서 내가 죽게 되면 내 남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라고 하여 그 후손들이 문 씨의 유언에 따라 남편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고 이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정려각은 높이가 70cm 정도 되는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지붕으로 되어 있다.

 


※ 소개 정보
- 개장일
연중개방

- 문의및안내
063-350-2444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상시

- 주차시설
불가





◎ 입 장 료
무료





남평문씨열녀비 (4)남평문씨열녀비 (1)남평문씨열녀비 (2)남평문씨열녀비 (3)





◎ 주위 관광 정보

⊙ 효자임옥산정려각


- 홈페이지
http://tour.jb.go.kr/index.do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이 효자각은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 방면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맞배지붕이다. 현재 효자각의 안에는 "효자주부임옥산지려”라는 명문이 음각된 비석과 중수와 관련된 5개의 현판이 벽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 효자각의 서쪽에는 1990년에 세운 임산옥산정려라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옥산은 장수현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호를 국헌이라 하였다. 그는 조선 성종 때 대궐에 있어 달라는 임금의 청을 버리고 향리인 장수로 내려와 현감을 하였다. 산서면에 있던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속칭 비행기 고개를 넘어 어머니의 문병을 다녔는데 야밤에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의 볼기를 칼로 떼어 어머님께 드렸더니 그 살과 피를 먹고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 권희문가옥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main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 기미3.1운동비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비행로 82-4

기미3.1운동비는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전개 되었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 산서면 사계리에 있던 지금당 생도들이 사계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른 뒤 동화리 장터로 와서 장꾼들과 합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조국 독립에 뜻을 바친 선열들의 일을 기리기 위해 1983년 면민들이 뜻을 모아 동화리 경노당 옆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장수군민 기념사업으로 추진하여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주위에 둘러볼 곳은 전해산기념관, 장수향교, 뜬봉샘생태공원 등이 있다.

⊙ 영천서원


- 홈페이지
임실군 문화관광 http://tour.imsil.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기묘사화로 희생된 안처순을 중심으로 정환·정황·이대병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안처순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지방학교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영천서원은 광해군 11년(1619)에 세웠으며, 숙종 12년(1686)에 나라에서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후손들이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공부하는 장소인 강당 역시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이 서원은 근처에 있는 30여 개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뛰어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왔다고 한다.

⊙ 압계서원


- 홈페이지
https://www.jangsu.go.kr/index.jangsu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구암길 77-14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압계서원은 장수군 산서면 학선리에 있는 서원으로 1789년(정조 13)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고려의 명신 육려와 함께 임옥산·박이항 등 3인의 신위를 모셨다. 이어 1798년(정조 22) 박이겸, 1799년에 전설을 각각 배향함으로써 모두 5위의 위패를 봉안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거된 뒤 후손들이 제단을 만들어 제사만 지내다가 1958년 중건되었다. 외삼문인 산앙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압계사 사적비가 서 있고 맞은편에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으로 된 울흥재가 자리 잡고 있다. 압계사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압계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 17일 향사를 지낸다.
압계서원은 옛날에는 산서면 지방의 향약소로도 사용되었다.

⊙ 창원정씨종가


- 홈페이지
https://tour.jb.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서원길 16

유헌 정황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종가이다. 유헌 정황은 인종의 장례 때 예법을 준수할 것을 주장하다가 정미사화 때 거제도로 유배되어 일생을 마쳤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행랑채는 1854년 지었고 대문은 1927년에 지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가 튼 ㄷ자형으로 배치되고 사랑채 옆에 행랑채가 경사지게 놓였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지은 상류주택이며, 근처의 작은 종가인 정상윤 가옥과는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에 지었지만 정상윤 가옥이 크고 화려한데 비해, 이 집은 큰 종가이면서도 규모가 작고 소박하며 실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안채를 제외하고는 변화된 부분이 많지 않아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덕암서원(임실)


- 홈페이지
http://www.seowonstay.com/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원산3길 1-22 (지사면)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임실군 지사면에 있는 덕암서원은 1863년에 건립되었으며, 포은 정몽주를 주벽으로 최양을 배향하다가 1821년(순조 21) 정지년을 추배하였으며, 1829년(순조 29)에 이르러 박종수를 다시 추배하였다. 그 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설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강당·정문·중문·고사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 사동서원


- 홈페이지
https://www.jangsu.go.kr/index.jangsu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길 35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사동서원은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 사우는 조선 1847년(헌종 13)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던 것을 1957년 복설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김해 김씨의 선조 가운데 김준손, 김기손, 김일손, 김대유, 김치삼, 김정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복설하면서 김극일을 추배하고,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김종직을 추배하고 김극일을 주벽으로 하였다. 현재의 사동서원 건물은 1986년 중건하였으며, 사당 3칸, 강당 5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다.

⊙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 홈페이지
http://tour.imsil.go.kr/
http://tour.jb.go.kr/index.do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지사면)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위치한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괄 문서들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서적과 문서들로 총 12권 10 매인데,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원 관계 서적이나 문서들이 희귀한 편인데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를 두루 구비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며, 保奴案, 保直案은 院奴와 서원의 지숙을 담당하던 院直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배정된 保인 保奴, 保直의 명단으로 19세기에 서원에도 保가 배정되었음을 알려준다. 古文書 중에는 1) 서원 接人의 잡역을 금해줄 것을 진정하여 수령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2) 서원 儒案에 평민이 入錄되고 있으며 유생의 확보가 재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3) 서원 유생을 수령이 着定하고 그 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있어 18- 19세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자료이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4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