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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산 마법의 숲 체험원
-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94-5
광주 남구에 자리한 제봉산에는 특별한 숲 체험원이 자리한다. 사유지임에도 토지 소유자가 동의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친환경 놀이터를 조성한 것이다. 마법의 숲이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하늘 높이 솟은 나무와 보드라운 흙길, 계절마다 피고 지는 야생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모험의 숲과 바람의 숲, 얼음의 숲, 상상의 숲, 비밀의 숲, 마법의 숲 등 어린이의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숲 놀이터를 비롯해 습지원과 편백림도 자리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통나무 오두막을 비롯해 바위를 이용한 밧줄 타기와 클라이밍, 자연 경사를 활용한 나무 미끄럼틀 등 대부분의 시설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을 활용했다. 3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유아를 대상으로 숲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62-607-3842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19:00 이후 이용금지
- 주차시설
주차가능
- 체험가능연령
5~7세
- 체험안내
숲체험프로그램 운영
◎ 주위 관광 정보
⊙ 고씨삼강문
- 홈페이지
https://www.namgu.gwangju.kr/index.es?sid=a7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6 (압촌동)
이 정려는 고경명 선생을 비롯하여 그 일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1충, 3효, 2열, 1절의로 표창되어 있다. 충렬공 제봉(霽峰) 고경명(1533~1592) 선생은 압촌동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동래부사(東萊府使)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곳에는 고경명 선생을 비롯하여 진주성에서 전사한 효열공 종후(孝烈公 從厚), 금산에서 전사한 의열공 인후(毅烈公 因厚)등 효자 두아들과 열녀로서 정유재란때 순절한 그의 딸 영광유생 노상룡(盧尙龍)의 처와 고거후(高巨厚)의 처로 그의 질부(姪婦)인 광산정씨(光山鄭氏), 효자로 그의 손자인 선교랑(宣敎郞) 고부금(高傅金)과 절의(節義)로 죽은 동생 고경형(高敬兄)등 일가 7명이 모셔져 있다.
현존 건물은 1844년에 세운 것으로 사방에 홍살문을 설치하여 내부를 차단하고 앞 뒤 이열로 정려현판(旌閭懸板)을 걸었다.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맞배지붕으로 지붕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처리했다. 건물 밖에는 담장을 돌리고 외삼문(外三文)을 세웠으며 삼강문 옆에는 고씨문중의 제각인 추원각(追遠閣)이 있다. 장흥고씨 삼강문은 충렬공 고경명의 태생지인 압촌동 마을입구에 있다. 정석7간 측면 1간의 골기와 8작지붕으로서 임진왜란 후 왜병이 철수한 선조28년(1595)에 고경명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명하여 세운 정려(旌閭)이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위에는 창방을 가구하고 굴도리를 올렸으며 내부에는 대들보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올려 종도리를 가구한 5량집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고경명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준봉 고종후와 학봉 고인후 그리고 정유재란때 왜적과 대항하여 순절한 그의 딸인 열려 노상용(영광의 유생)의 처와 질부인 고거후의 처 광산정씨 이밖에 효자로 선교랑 고부금(고경명의 손자)과 절의로 죽은 고경형 등 일가 의 7명의 충절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 고원희가옥
-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1길 12 (압촌동)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 필문 이선제부조묘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 (원산동)
* 필문 이선제를 모시는 사당, 필문 이선제부조묘 *
부조묘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영구히 제사지내도록 하던 사당으로 조선 초의 문신인 필문 이선제(1389∼1454년)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 포충사 뒤쪽 산기슭에 있으나 원래의 위치에서 50여m 왼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앞마루를 둔 맞배집이다. 앞마루는 반폭칸으로 개방하였으며, 툇마루를 놓았다. 공포( 包)는 쇠서 하나를 내어 가운데에 연꽃무늬를 둔 초익공(初翼工)으로 위부분에 용머리 장식을 하였고 마루의 대들보 쪽에는 구름무늬로 처리하였다. 가구(架構)는 고주(高柱) 5량형(梁形)으로 되어 있으며, 도리(道理)는 장혀(長舌)를 받친 국도리를 걸쳤다. 그리고 마루 기둥의 주심도리(柱心道理) 외기둥 위는 납도리를 사용하였고, 두심도리 장혀와 창방 사이에는 소로(小累)를 둔 원반(原盤)을 하나씩 놓았다. 막돌초석 위에 정면만 민흘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마루 밑은 호박돌 위에 동바리 기둥으로 처리하여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밑벽막이 없이 개방하였다. 문은 쌍여닫이문으로 띠살문이며, 겹처마이다. 고설삼문(高設三門)과 양측의 맞담 위에 기와를 얹어 담을 돌렸으며, 뒤쪽은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다. 부조묘의 뒷산 언덕에 필문의 묘(墓)와 묘비(墓碑)가 있으며, 이곳에서 500여m 떨어진 도로변에 그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마을 앞에는 필문이 심은 괘고정(掛鼓亭)이라 불리는 수령(樹齡) 600여년의 노거수(老巨樹)가 있어 유서 깊은 이곳의 유래를 상상하게 한다.
* 고려사 편찬에 참여한 필문 이선제 *
필문 이선제는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세자빈객(世子賓客),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등을 역임하였고, 문종 때는 정인지(鄭麟趾) 등과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참여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에 돌아와서는 후진 양성은 물론 이 고장에 향약(鄕約)을 베풀어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이루는데 모범이 되었다. 이 곳 이외에도 강진의 수암서원 오현당(秀巖書院 五賢堂)과 죽산사(竹山祠)에 배향되었다.
[문화재 정보]
지정 :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소장 : 사유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민속자료
규모 :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 포충사
-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 (원산동)
1601년 전라도 광주에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고인후(高因厚)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을 함께 배향하였다. 1603년 사액을 받았다.
⊙ 학산사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서구 불암길 82-100 (서창동)
서창동 불암마을 팔학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1592)때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삽봉 김세근의 위업을 기려 제사 지내는 사우이다. 선조 25년(1592년) 왜적이 부산에 상륙하여 서울에 침입하니 선조(조선14대 임금)가 환난을 피하여 의주로 몽진하였을 때 김공은 왜구의 침공을 예상하여 미리 사복 시주부(정 6품)벼 슬을 사임하고 서창, 관내 세동 백마산 수련곡(속칭 수원골)에서 장정들을 모아 무술을 연마 한후 이들 3백여 명을 이끌고 영동과 황간의 적을 격파하고 금산의 중간지점에서 수일을 유 진하다가 왜의 대군과 만나 구전중, 와평들에서 중과부적으로 주장 고경명과 함께 장렬히 순절하였다.현재 학산사는 광주 유림들이 그의 거룩한 넋을 추모하는 사우건립을 발의하여 1958년 본 학산사를 지어 매년 춘향(음 3월 22일)을 행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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