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남도

[경상남도 창녕군] 명덕생태수변공원

반응형

명덕생태수변공원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159

창녕읍에 자리한 수변공원으로 주민들이 즐겨 산책하는 코스다. 과거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던 명덕저수지를 현대적으로 공원화시켰다. 걷기 좋은 나무 데크길은 물론 저수지에 다양한 수생식물을 심어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저수지 가운데로 아치형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구름다리가 놓였고, 그 양쪽으로 울타리를 설치해 안전하게 수변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구름다리 건너 팔각정에선 잠시 걸음을 쉬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이처럼 낮에도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명덕 생태 수변공원은 밤이 되면 색다른 매력을 펼쳐 보인다. 구름다리에 알록달록한 조명을 설치해 로맨틱한 야경을 선사하는 것. 아름다운 야경이 저수지에 비쳐 일렁이는 모습도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5-530-1999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24시간

- 주차시설
주차가능







창녕_명덕생태수변공원 (1)창녕_명덕생태수변공원 (2)창녕_명덕생태수변공원 (3)창녕_명덕생태수변공원 (4)



◎ 주위 관광 정보

⊙ 창녕향교


- 홈페이지
http://www.cng.go.kr/tour.web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향교길 54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효종연간에 중건되었고, 191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으며, 1926년 풍화루(風化樓)와 1959년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60년 화재로 풍화루가 소실되었다가 곧 재건하였고, 1972년 전사청을 옮겨지었다. 1976년 내삼문을 재건하고 1980년 동재(東齋)·서재(西齋)를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무와 서무,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內三門), 풍화루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전적 가운데 ≪창녕향교직원임록 昌寧鄕校直員任錄≫·≪창녕유림노유안 昌寧儒林老儒案≫·≪창녕유안 昌寧儒案≫·≪노비안 奴婢案≫·≪교임안 校任案≫·≪향교수미교구절목 鄕校需米撟捄節目≫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 창녕 석빙고


- 홈페이지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창밀로 34 (창녕박물관) 옆

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과는 현풍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남쪽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이다. 교동에는 왕릉이라고 불리는 대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대소 수십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으나, 현재는 8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봉토들의 파손이 심하다. 이 고분군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조사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일부만 국내에 남아 있다. 당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 고분군은 횡구식(橫口式) 또는 횡혈식(橫穴式) 고분이었다고 한다.

출토 유물은 금봉관을 비롯하여 순금이식(純金耳飾) 등 각종 귀금속으로 된 장신구와 동, 철제의 무구, 토기 등 대량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남긴 발굴 보고서가 간단하여 교동고분군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현존하는 고분 중 21기(基)는 지금까지 복원한 것인데 그중 1기는 입구 쪽을 개봉했다. 구조는 현실(玄室)과 연도는 구별이 없고 다만 장방형(長方形)이 평면횡혈식(平面橫穴式) 석실로 삼면의 측벽은 크고 작은 돌덩이이고 판석(板石)으로 천장을 덮은 것이다. 일본인에 의해 개략적인 보고서가 출판되기는 하였으나 그 많은 유물들의 출토 경위와 유구(遺構)들의 특징이 자세하게 밝혀지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으로, 비사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송현동 무덤들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에서 서쪽으로 80여기의 무덤이 있던 큰 무덤들이었으나, 지금은 16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2지역은 송현동석불이 있는 부근에 20여 기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논으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덤은 겨우 몇 기 정도이다. 근처의 교동 무덤들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성격이 거의 같다고 여겨진다. 교동무덤과 함께 1918년에 발굴되어 많은 양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유물 중 일부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도 있다고 한다.


⊙ 창녕 인양사 조성비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일명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이라고도 하는데, 인양사의 금당(金堂) 후편에 세워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일대의 전답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로 인정되는 문양의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당시에는 대가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각 안에 머리가 결실되고 없는 높이 55㎝가량의 석조좌상 1軀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창녕박물관에서 보관되고 있다.또 비석도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서쪽 편에 총탄흔적이 있고 북쪽 편 비상에도 총탄 흔적이 뚜렷이 생겼다. 귀부와 이수 대신에 장방형의 대석과 옥개형의 개석을 얹은 특이한 모양의 비(碑)로 불사(佛事)조성에 관하여 기록한 특수한 비석이다. 인양사(仁陽寺)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탑, 불상, 금당, 요사등의 조성연대와 소요된 양식에 관하여 낱낱이 기재하였다.

앞면과 양측면은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고, 뒷면 전부에는 우아한 기법으로 승상이 양각되어 있다. 앞면의 비문(碑文)은 비의 제목없이 10행으로 각(各) 행(行) 28자(字)를 자경(字徑) 4㎝의 육조체(六朝?)로 새겼다. 비문(碑文)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다. 뒷면의 조상(彫像)을 지장보살(地藏菩薩像)이라고도 하고, 인양사 조관(造管)의 공로자인 한 고승의 조상(彫像)이라고도 하는 두 가지 설이 있는 비(碑)이다. 금석문(金石文)으로서뿐만 아니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서도 귀중한 유물이다.

[문화재 정보]
지정번호 : 보물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크기 : 높이 1.58m, 폭 48cm, 두께 18cm
분류 : 비


⊙ 삼오식당 창녕본점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시장길 90

삼오식당은 창녕 향토 음식으로 유명한 수구레 국밥 맛집으로 전통 시장 근처에 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에서 떼어낸 쫄깃한 지방육으로 특수부위 전문점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문을 닫는 삼오식당은 수구레 국밥 외에 수구레 국수, 선지 국수, 선지 국밥, 수구레 전골, 수구레 볶음 등이 있다. 수구레 국밥은 얼큰한 국물에 수구레, 선지, 콩나물, 대파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어 어느 정도 건져 먹은 후 밥을 말아야 할 만큼 양이 많다. 기본 찬으로 다진 마늘, 다친 청양고추, 깍두기, 김치, 양파 장아찌가 나온다. 삼오식당 바로 앞에는 매달 3일, 8일 5일장이 열려 날짜에 맞춰 방문한다면 창녕 전통 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 창녕박물관


- 홈페이지
http://museum.cng.go.kr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창밀로 34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에 있는 종합박물관이다. 지역 문화를 연구하고 홍보하며,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창녕 지역에서 출토된 고고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창녕박물관은 1996년 3월 개관하였으며, 화왕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교동고분군과 인접하고 있으며 2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이며, 1층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되어 있다. 지하에는 시청각실이 마련되어 있어 창녕군 관내의 문화유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시청각자료를 방영하고 있다.
가야시대 및 신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 (토기류 85점, 마구류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구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교동고분군과 계성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전시관 중앙홀에는 가야고분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디오라마)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가야시대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그리고 계성고분군의 대형고분 1기를 이전, 복원하여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창녕교동 고분군(사적)내에 있고, 인근에는 송현동 고분군(사적)과 목마산성(사적), 진흥왕 척경비(국보)와 창녕 술정리동 3층석탑(국보)이 있다.

⊙ 경주 못지 않은 문화재의 보고


가야시대 및 신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 (토기류
85점, 마구류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구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교동고분군과 계성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우포잠자리나라


- 홈페이지
https://www.cng.go.kr/tour/upo-park.web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군청길 1

우포잠자리나라는 부지면적 39,484㎡, 시설면적 8,517㎡로 잠자리를 테마로 한 곤충체험학습관이다. 한반도에는 총 11과 58속 123종의 잠자리가, 우리나라에는 11과 53속 102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우포늪에는 10과 41속 73종의 잠자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4월에서 10월까지는 우포늪에 서식하는 잠자리와 곤충 등을 테마로 한 사진 전시, 수중에서의 잠자리 유충의 먹이활동 관찰, 잠자리 유충 먹이 주기, 잠자리 우화 장면 관찰, 잠자리 날리기 등을 체험하고, 11월에서 3월까지는 수련 관찰, 가는실잠자리 성충 월동장면 연출 등 1년 내내 다양한 친환경 체험 테마 콘텐츠로 생태학습의 기회 제공과 자연생태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잠자리를 잡으러 자연 속을 마음껏 뛰어다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해보자.

⊙ 1,500년 전 가야시대 소녀를 만나러 가다


창녕은 가야와 신라의 유적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고장이다. 가야시대의 고분군으로 알려진 교동, 송현동고분군에서는 인골이 수습되어 가야시대의 순장된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기도 했고, 국보로 지정된 신라 진흥왕이 세운 척경비와 술정리 동삼층석탑, 조선시대의 석빙고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유산을 만난다.

⊙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이 소풍 갔던 학생에게 발견되어 알려졌는데,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4년 2월 7일 창녕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橋本良臧)에 의해서였다. 그 후 1924년 지금의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 했으므로 따로 척경비(拓境碑)라 일컫는다. 순수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는데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고 그 곳에서 천신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순수한 기념으로 비를 세우기 시작한것은 진나라 시황제(BC.259∼BC.210)부터라고 한다.

이 비는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개석(蓋石)이나 대석 (臺石)을 사용하지 않은 삼국시대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한 면을 간 다음 바깥 면 비석의 형상에 따라 음각의 줄을 돌렸는데 오른쪽 상부는 암석이 사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일행(一行)씩 낮추어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자수 (字數)는 일정하지 않아 끝 행은 3자 뿐인 것도 있으나 26자의 행이 가장 많고 후반부는 위에서 2행마다 1자식 낮추어져 있다. 비문 전반부는 마손되어 자획이 불분명한 점이 있으나 후반부는 선명하여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의 내용은 순수의 년시(신사년 2월), 사적, 수가인물(수행원)의 3부분으로 되어있고 인물의 기록순서는 속부, 인명, 직관, 직위를 표기하여 삼국시대신라비문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간격은 4㎝이다.


⊙ 창녕 진양하씨 고택


- 홈페이지
창녕군 관광 https://www.cng.go.kr/tour/culture/00001351.web?idx=29&amode=view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시장1길 63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하병수의 17대 조상인 백연(白淵)이 건립하였다 전한다. 또한 상도리(上道里)에 건륭(乾隆) 25년이라 적힌 묵서(墨書)가 있어 1760년(영조 36)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가옥구조와 민가의 건축술을 알 수 있는 남향의 초가로 하씨(河氏)가 수대로 살아온 터이다.

가옥은 목조 초가로 일자형 홑집이다. 오른쪽 첫 칸이 부엌이고 안방, 대청, 건넌방이 차례로 각각 1칸씩인 4칸집으로 약간씩 변형되었다. 부엌 뒤로 반문을 내달아 창고를 만들었고, 남방집의 고상형(高床形) 대신 산곡간의 저상식(低床式) 집처럼 전퇴(前退)를 생략하였다. 마루판자는 윗면이 평면, 아래면은 원목 그대로이고 지붕은 쇠풀로써 덮었으며 못은 사용하지 않았다. 서까래는 구멍을 뚫어 그대로 이었고 지금 가옥의 부엌위치가 서쪽인 것에 반해 이곳은 동편으로 되어 있다. 서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 부엌순으로 되어 있고 부엌 뒤로 반문을 내달아 창고를 만들었고 지붕은 양토없이 밀대로 거꾸로 엮어 얹었다.


⊙ 창녕 만옥정공원


- 홈페이지
https://www.cng.go.kr/tour/sites/00001304.web

- 주소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34

창녕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공원이다. 면적 1만㎡의 작은 공원이지만 지정문화재와 봄철의 벚꽃 장관으로 유명하다.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名唱)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화왕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옆으로 나 있다. 공원 뒤쪽 언덕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가 있는데,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창녕읍 화왕산록(火旺山麓)에 있던 것을 192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또한 공원에는 조선 후기의 관아건물인 창녕객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퇴천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창녕 척화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등의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 창녕상설시장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창녕시장길 66

창녕읍의 상설시장이자 5일장이 서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되지만 3일, 8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통 시장으로 변신한다. 고추, 마늘, 양파 등 각종 채소류와 제철 과일 그리고 꼬막, 조개, 새우 등의 신선한 해산물, 잉어, 가물치,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를 판매하는 어물전도 즐비하다. 건조식품, 가전용품, 약재, 떡 등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하고 직접 꾸민 가판도 가지각색이지만 전통시장답게 인심은 여전히 정겹다. 장날 빠지면 섭섭한 먹거리도 다양하지만 그중 1박 2일 촬영 중 이수근이 먹었다는 수구레 국밥은 여전히 인기가 많아 꼭 한번 먹어봐야 할 메뉴이다.

⊙ 창녕문화재 야행


- 홈페이지
www.창녕야행.com

- 창녕군
055-533-1236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하리

<창녕 별빛 마실>을 야행의 소주제로 문화자원을 활용한 야간 행사를 개발·보급하여 우수한 문화재가 집적된 창녕군 역사문화지구의 다양한 가치를 별빛으로 상징화하여 지역문화와 유산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 홈페이지
https://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군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에는 위·아래층 모두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한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뚜껑달린 청동잔형사리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바닥돌 주위에 돌림돌을 놓았던 구조도 밝혀졌다.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비율로 줄어드는 몸돌로 인해 충분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부적인 수법도 정교하여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과 비길만한 기품이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신라 영역에 속해있던 창녕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볼 때, 경주 중심의 탑 건립 경향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 창녕포교당


- 홈페이지
https://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신당2길 4-3

*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창녕포교당 *

화왕산의 억새와 관룡사로 유명한 경남 창녕은 예부터 비화가야(非火伽倻), 즉 비사벌이라 불려지던 문화의 고장으로 각종 문화재가 많아 제2의 경주라 불린다. 일찍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낙동강 이동(以東)에 아름다운 가야문화를 창조해온 창녕은 부처님의 법화도 함께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인 통도사 창녕포교당은 불법을 수호하고 포교의 일선에서 매진하고 있는 창녕의 명찰 중 하나이다.

비록 포교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절집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창녕포교당은 적멸보궁을 조성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으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목조석가여래가 안치되어 있는 사찰이다. 또한 창녕포교당이 자리한 곳은 신라시대 거찰로 알려졌던 인왕사(仁旺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 창녕포교당은 포교당 이상의 조건과 역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창녕포교당은 기도처와 포교의 방편 외에도 관내 독거노인돕기 활동을 매일 펼쳐나가는 등 지역사회 내에서도 기여하는 사찰로정평이 나있다. 비화가야의 넓은 들판 속 인왕사터에 자리한 창녕포교당은 불국정토를
만들기 위한 염원이 불보살의 뜻과 닿아있으리라 믿어본다.


* 창녕포교당의 창건배경 및 역사 *

통도사 창녕포교당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요사채 문설주 위에 죽 걸려있는 현판 가운데 '불찰통도사본말사창녕포교당창건대시주공덕기'에 나와 있다. 이를 살펴보면 불기 2966년(1939) 7월 7일에 포교사 춘담(春潭)스님께서 인왕경(仁旺經)을 교화하기 위하여 당시 창녕지역의 대지주였던 하준석(河駿錫, 당시 곤양, 현풍, 비안군수를 지냈던 통정대부 하재구의 2남이자 진양 하씨 30세손)의 슬하에 자녀가 귀하여 득남원(得男願)을 발원하여 세운 절이라고 나와 있다. 당시 창녕포교당에 처음 주석했던 춘담tm님은 사찰을 준공한 후의 심정을 노래한 송(頌)에서 창건 불사가 얼마나 어려웠음인지 이렇게 적고 있다.

建立何歲月:어느 세월에 다 지으랴!
龜毛爲棟樑:거북의 털로써 기둥을 세우랴!
經營空劫前:세월이 다 가기 전에 운영이나 해볼까
兎角作柱椽:토끼 뿔로 기둥 서까래를 삼을까나

또 ‘창녕지명사’에 전하는 창녕읍 신당마을 유래에 대해 '창녕여고와 포교당(仁旺寺)이 있는 일대로 말흘리의 동북부에 위치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창녕군의 전통사찰현황에 창녕포교당은 1920년도 창건하였는데 “신라시대 창녕읍 술정리에 ‘인왕사’라는 포교당 전신인 대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동산선사가 옛 인왕산사를 재현한 포교당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에 초창시부터 지극정성으로 다니고 있는 법왕자(法王子, 85세, 신당리 거주)보살의 증언에 의하면 곤양군수를 지낸 만석군의 모친인 김선명화(金善明華)보살과 아들 내외인 하준석(河駿錫), 서공덕화(徐功德華)보살이이 아들을 낳기 위해 원불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아들 영달(永達)이 범종을 시주하였다는데 지금도적멸보궁에 ‘하영달’이라는 명문이 있는 당시의 범종이 남아 있다. 따라서 창녕포교당은 1939년 창건이 확실해 보인다. 이후 1978년 청운스님(현 밀양 표충사 주지)이 주석할 당시 6.25때 화마를 입은 관룡사 팔상전에 모셨던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이운해 왔는데 현재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이후 적멸보궁에 봉안해 놓았다. 이후 설법전 등의 요사채와 석가모니입상 등을 조성해 놓았다.


⊙ 대중분식당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대로 27

창녕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대중분식당은 메밀 막국수 전문점이다. 메뉴는 메밀 막국수, 메밀 왕만두가 있고 동절기에만 판매하는 한방선지해장국도 있다. 담백한 육수와 푸짐한 양으로 점심시간과 주말에는 대기가 발생할 수 있지만 메뉴의 특성상 테이블 회전이 빠른 곳이다. 살얼음 떠있는 육수에 탱글탱글한 메밀 면이 들어가 있고 채 썬 오이와 당근, 양념이 올라가 있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심심할 수 있지만 먹다 보면 담백한 맛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주문하지 않은 양념 안된 국수가 한 그릇씩 더 나오는데 양이 부족할 수 있어 미리 추가 사리를 제공하는 것이 특이점이다. 오이, 양파, 고와 함께 나오는 쌈장은 볶은 콩을 넣어 직접 만드는 것으로 막국수만큼 맛있기로 유명하다. 창녕 박물관이 가까이 있어 식사 후 방문하기 좋다.

⊙ 양반청국장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화왕산로 64

창녕읍에 있는 창녕 양반청국장은 옥천골의 오염되지 않은 물과 콩을 삶고 메주를 쑤어 직접 장을 담아 만드는 청국장 전문점이다. 2년 이상 숙성된 전통 된장으로 만드는 청국장은 건강에도 이롭고, 맛도 좋아 인기가 좋다. 청국장과 제육불고기, 생선이 나오는 청국장 정식과 송이 된장이 나오는 송이된장정식이 이곳 대표 메뉴이다. 청국장을 주문하면 큰 대접과 김치, 무생채, 콩나물, 고사리, 나물, 버섯볶음 등 비벼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나온다. 곁들여 먹기 좋은 소불고기와 메밀전병, 해물파전도 있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근처 걷기 좋은 만옥정 공원과 화왕산 군립 공원 입구가 가까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 홈페이지
https://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로 55-12

*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이다. 높이는 1.37m,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큰 바위에 앞면을 돌출되게 조각한 마애불(磨崖佛)로 바위 자체를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로 이용하고 있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어깨는 넓게 떡 벌어져 있고, 팔과 가슴은 넓고 풍만하지만 크기에 비해 어딘지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면서 입은 옷은 얇게 신체에 밀착되었는데, 형식적으로 처리된 계단식의 옷주름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이 석불은 얼굴이나 얇게 밀착된 옷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열의 양식을 이어받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굴암 불상보다는 사실성이 줄어들고 힘이 빠져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양식을 보여준다.


⊙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통일신라 석탑으로 2중기단 위에 세운 3층석탑이다. 높이 5.1m, 화강석으로 된 탑으로 1970년 6월 24일 보물로 지정되었다.상층기단(上層基壇)의 면석(面石) 중앙은 별도의 석재로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으며, 위에는 양 우주(隅柱)가 조각되고 옥개(屋蓋) 받침은 5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개석 전각의 반전은 그리 심하지 않다. 상층기단의 각 면석의 조각은 곡선의 아름다운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기단은 8개의 면석으로 조립되고 탱주(撑柱)는 4매씩 되었으며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1매이다.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술정리 동 3층석탑보다 수준이 떨어지며 제작 시대 역시 같은 통일신라시대지만 동 삼층석탑보다는 후대로 추정된다.


⊙ 산과구름아래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자하곡길 25

화왕산 군립 공원 입구 지나서 보이는 산과구름아래는 군립 공원 근처에 있어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이다. 규모가 커서 야외 정원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오두막 놀이터, 모래놀이, 트램펄린, 전통놀이, 유아용 자전거 등이 있고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또 정원 곳곳 물레방아, 장독대 등 다양한 소품들이 놓여 있어 볼거리가 있다. 1층, 2층으로 된 산과구름아래는 개별 룸과 좌식, 입식 테이블, 테라스 등 여러 곳에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이고 등산로 입구에 있어 음료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다. 근처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역사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만옥정 공원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더 하리(더하리스토리 주식회사)


- 홈페이지
https://idus.com/the_haristory
https://smartstore.naver.com/the_haristory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화왕산로 170

더 하리는 경남 창녕군 화왕산의 맑고 푸르른 정기가 녹아있는 작고 소박한 하리마을에서 탄생했다. 더 하리의 심볼인 따오기는 멸종되었다가 창녕군이 복원하여 천혜의 환경이 유지되는 창녕에서만 서식하는 세계에서 귀한 새이다. 더 하리의 제품은 따오기가 살아갈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 진다. 모든 제품에 자연의 진심을 담아, 엄선된 최상급 재료를 사용하여 ‘더하리’만의 수제방식으로 만들어 진다. 온라인쇼핑몰 스마트스토어, 아이디어스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 도성암(창녕)


- 홈페이지
창녕여행 http://www.cng.go.kr/tour.web

-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창녕읍)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2003년 9월 당시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와 함께 우리들의 가슴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고 떠났다. 더구나 수해와 산사태, 강풍으로 인한 각 사찰의 피해도 커 불교계가 합심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결집된 힘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창녕 화왕산의 도성암은 재산피해와 더불어 흙더미가 요사채를 덮쳐 인명 사망피해까지 생겨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불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은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로 읽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도성암을 찾은 어머니가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된 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동안 도성암은 피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험한 상황이었으나 태풍에 대비한 수로를 건설하고 새로운 전각을 세워 신라고찰 도성암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도성암은 신라 현덕왕 2년(810)에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한 때 역사가 끊어진 사찰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하면서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성암은 악몽을 딛고 여느 산사와 같은 평온을 되찾았다.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은 도유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케케묵은 진리’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장면이다. 부디 앞으로의 도성암이 굳은 반석 위에서 튼실하게 정법을 수호하는 도량이 되길 바란다.

* 도성암의 유래와 걸어온 길 *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810년(신라 현덕왕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후 오랫동안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