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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칠연의총 칠연의총 - 홈페이지 http://tour.muju.go.kr http://www.cha.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칠연로 608 (안성면) 칠연의총은 무주군 덕유산 통안 마을 은반대에서 0.1㎞ 지점 계곡 왼편에 있는 구한말 전사한 신명선 의병 부대의 유해를 합장한 무덤이다.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을 당하게 되자 일본의 침략에 울분을 참지 못하던 시위 보병들은 전국에 흩어져 항쟁을 벌였다. 이때 시위대 출신인 신명선이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무주·장수·순창·용담·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신명선 부대는 초기 창의할 때 불과 40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세력이 불어나 150여 명의 의병이 결집된 .. 더보기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 왕궁리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익산 왕궁리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 홈페이지 왕궁리유적전시관 http://www.iksan.go.kr/wg/index.iksan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전화번호 063-859-5875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왕궁리유적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위치한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말기 익산 경영과정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왕궁으로 사비(부여)와 함께 복도로 이해하고 있다. 백제 왕궁은 용화산에서 발원한 능선 끝자락의 낮은 구릉 위에 조성되었다. 1989년부터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시용된 후 왕궁의 중요 건물을 철거하고 탑과 금당, 강당 등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이다. 왕궁리유적의 왕궁은.. 더보기
[전라북도 남원시] 동편제탯자리 동편제탯자리 - 홈페이지 http://www.namwon.go.kr/tour/index.do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여류 명창 박초월의 소리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순조 때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 영역을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음악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 더보기
[전라북도 무주군] 라제통문 라제통문 - 홈페이지 https://tour.muju.go.kr/tou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산85 라제통문은 무주의 덕유산과 석모산 사이에 있는 석굴문이자, 무주 구천동 33경 중 제1경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추정되고, 굴이 생기기 전에 석모산은 무풍면과 설천면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굴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의 언어와 풍습이 서로 다른데 옛 신라 지역인 동쪽(무풍면)은 경상권 방언을 쓰고 풍습도 경상권을 따르며, 옛 백제 지역인 서쪽(설천면)은 전라권 방언을 쓴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 개발 등을 위해 굴을 뚫었다고 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환경부 인증 국가지질공원 지.. 더보기
[전라북도 남원시] 대곡리암각화 대곡리암각화 - 홈페이지 남원문화관광 더보기
[전라북도 부안군] 반계선생유적지 반계선생유적지 - 홈페이지 http://www.buan.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 조선 효종·현종 때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1622∼1673) 선생의 유적이다. 선생은 1648년 2차례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효종 4년(1653)에 이곳으로 이사한 후 일생을 숨어지냈다. 선생은 뛰어난 학문으로 거듭 벼슬자리를 받았으나 모두 사퇴하고, 평생을 학문에만 힘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반계수록』26권을 펴냈다. 선생의 학문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는데, 선생의 주된 저서인『반계수록』에서 농촌을 부유하게 하고 민생을 넉넉하게 하는 여러 가지 주장을 펴 정약용 등의 후기 실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더보기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 벽골제 김제 벽골제 - 홈페이지 김제시 문화관광 http://www.gimje.go.kr/tour/index.gimje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8백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들어진 때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다. .. 더보기
[전라북도 전주시] 경기전 경기전 - 홈페이지 전주시 문화관광 http://tour.jeonju.go.kr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경기전은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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